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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매일 쓰는 시, 매일 다른 하루

by 오르봉 2025. 4. 24.

아무 일 없는 날의 시

1. 줄거리 요약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도시를 누비며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일을 반복하지만, 그 안에 지루함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마음속 시를 써내려갑니다.

 

패터슨은 매일 같은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폭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퇴근 후에는 사랑스러운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습니다. 주말에는 애견 마빈과 함께 산책을 하고, 동네 펍에서 맥주 한 잔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아내 로라는 패터슨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입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 하며, 흑백 인테리어와 컵케이크 장사, 기타 배우기에 도전합니다. 두 사람은 삶에 대한 태도는 다르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지지합니다.

 

이 영화에는 큰 사건이 없습니다. 다만 작은 충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패터슨이 아끼는 시 노트가 애견 마빈에게 찢겨나가는 사건, 혹은 로라의 꿈을 위해 기타를 사주는 결정 등이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파국이나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패터슨은 한 일본인 시인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다시금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위안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시가 사라졌지만, 그 시를 썼던 마음과 감각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또 다른 하루를 담담히 맞이합니다.

 


2. 일상성의 미학, 반복의 예술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반복’을 통해 평범한 삶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펍에 가는 패터슨의 삶은 단조롭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세상의 작은 리듬과 감각이 세밀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패터슨의 시선을 따라 갑니다.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대화, 복사기 속 잉크 냄새, 아내가 굽는 머핀의 향기, 폭포의 소리—all of these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감각 요소로 작용합니다. 자무쉬는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말하듯, 보통의 일상이 가진 리듬과 구조를 섬세하게 수집해 나갑니다.

 

특히 영화 속에 반복되는 대화, 배경음악 없이 흐르는 장면, 그리고 아날로그적인 소품들은 디지털과 속도가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느린 삶’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일상도 어쩌면 하나의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3. 개인적인 감상 – 내 하루도 한 편의 시일 수 있을까

 

〈패터슨〉을 보고 난 후, 저는 처음으로 ‘나도 시를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시인이 아닌 사람도,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자신만의 표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는 말하지 않지만, 뭔가를 품고 살아간다는 것—그 진실을 들여다보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패터슨은 시를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지 않습니다. 그는 출판을 꿈꾸지 않고, SNS에 공유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복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만의 언어로 삶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모습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저에게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작은 습관’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어제 본 장면을 적어두는 것, 그 모든 게 어쩌면 한 편의 시일지도 모르겠다는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4. 독창적인 해석 – 시는 사건이 아니라, 감각이다

 

〈패터슨〉은 ‘시’를 이야기하지만, 전통적인 시의 형식이나 웅장한 서사를 전혀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시란 거대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작은 감각의 반복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대개 시는 슬픔, 고통, 사랑처럼 강렬한 감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말합니다. ‘작은 일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감각’이 시의 시작이라고. 패터슨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내는 모습은, 우리가 시를 쓰지 않더라도 삶을 시처럼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일본인 시인의 “시를 잃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당신 안에 있다”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순간에도 ‘무언가를 느끼고 적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